[문화일보] 하늘 우체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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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3030 |
등록일 | 2012/11/05 00:00 | ||
황주리/서양화가 운이 나빠 이런저런 일에 연루돼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친한 후배로부터 편지가 왔다. ‘카메라가 없어서 시를 써요. 다른 별에 여행 온 거라고 생각하며 견디고 있어요.’ 나는 매일 걷는 한강 둔치에 가서 답장을 썼다. ‘그대에게 그 다른 별에서의 체류는 훗날 시가 되고 힘이 되기를.’ 또박또박 써내려간 친필 편지를 아직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강 둔치를 걷다보면 모래톱이 있는 작은 강변이 숨어 있다. 나는 모래톱을 좋아한다. 그곳에 홀로 서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다 네 거다. 다 가져라.” 어제는 그곳에 외국인 젊은 부부와 달마시안 한 마리가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찍어서 사진작가인 후배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면회를 가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보냈던 단 십 분 동안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갓 뽑은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싶다 했다. 어쩌면 행복은, 자유는 정말 갓 뽑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커피는 오랜 시간 우리들의 영혼을 위로해왔던 게 틀림없다. 마치 우리 어린 시절의 짜장면이 그랬듯이. 살아서 편지를 주고받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하다못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만나는 것도, 트위터를 통해 동 시대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건 얼마전 인터넷에서 ‘서울추모공원’을 검색하다 ‘하늘 우체국’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한 뒤였다. 하늘 우체국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이 망자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관리하는 사이버 공간이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드물게는 친구나 자식에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편지들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며칠 전 서른여덟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이장(移葬)하기 전 유골함을 고르러 서울추모공원에 갔었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터널 하나만 지나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들어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추모공원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울음소리가 거대한 건물을 휘감고 도는 회오리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 분에게 저 소리가 울음소리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와 묘지의 역할을 한꺼번에 담당하는 탓에 곡(哭)소리가 들리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육신은 무거워도 영혼은 가볍다지만 죽어서도 갈 길이 너무 멀다. 어머니는 늘 영동에 한 줌 흙으로 묻혀 있는 외할아버지 유골을 모셔다 새문안교회 묘지에 묻혀 있는 외할머니의 유골과 함께 장호원에 있는 가족묘지에 합장을 하고 싶어 하셨다. 너무 일찍 사별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이제 와서 한 곳에 묻히고 싶어 하실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일은 산 사람들의 마음에 달렸을 뿐이다. 내 나라가 좋아진 건 삶의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다. 죽음의 영역에서도 서울은 선진국 못지않게 진화하고 있다. 우연찮게 서울추모공원을 답사하며 공원묘지도, 미술관도 시내에 있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많은 사람이 쉽게 가까운 서울추모공원에 가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리운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죽음이 삶과 가까운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가면 사르트르도, 보부아르도, 에디트 피아프도 다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구치소 안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엔 카메라가 없어 시를 쓴다는 후배의 편지를 읽으며, 모든 예술은 결국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사에 서툰 순진한 사람들이 구치소에 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은 드물지 않을 것이다. 운이 나빠 구치소에 들어간 후배는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에게 밥을 주는 일도 해봤다고 했다. 그들은 좀 다르냐고 물으니 후배는 웃으면서 겉보기엔 우리네랑 똑같다고 한다. 갓 뽑은 커피 한 잔 마실 수 없는 곳이 구치소다. 바깥 세상의 물건들을 전해줄 길은 없다. 영치금을 넣어주면 단지 그곳에서 파는 물건만 사서 먹고 입을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이승의 물건이 저승에서는 하나도 통용되지 않는 이치와도 다르지 않다. 저승에서는 무슨 물건이 필요할까? 문득 생전에 가까웠던 화가 이만익 선생이 떠올랐다. 얼마 전 서울추모공원에 모셨다는 생각이 떠올라 공원에 올라가 잠시 묵념하고 돌아와 내 마음의 하늘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친다. 선생님 뭐가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 생전에 커피를 즐기지 않던 그분은 아마 ‘순댓국 한 그릇’ 하실 것 같다. 고향이 북한인 선생님이 고향도 못 가보고 왜 그리 빨리 가셨는지, 나이 어린 내가 무슨 일엔가 막 대들던 기억도 다 용서하시라고 편지에 쓴다. 선생님 그곳에서도 그림을 그리시는지요? 아마도 저승의 물감은 이승과는 다르겠지요. 살아서 몇 번이나 더 만나겠느냐 하시던 말씀이 그립게 떠오르는 깊은 가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