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떠나는 날에도 가족배웅 못받고…제사상엔 김밥 한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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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3732 | ||
등록일 | 2014/11/04 00:00 | ||||
죽음 이후가 두려운 홀로노인들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아무개(68)씨는 사후 자신을 수습해주느라 수고할 이들에게 국밥 한 그릇이라도 챙겨 먹으라며 10만원을 남겼다. 주변에 주검을 거둬줄 이도 없고, 모르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기도 싫었던 최씨는 장례비로 보이는 100여만원을 따로 남겼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죽음 이후’는 이승의 생활고보다 두려울 때가 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숨졌을 때 정부가 지원하는 장제비는 75만원에 불과하다. 수의 한벌 걸치기에도 모자란다. ‘사후 복지’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현실과 그 이유 등을 살펴본다.
노숙·고시원 전전하던 염 할아버지 위패 앞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인 김밥 한 줄과 붕어빵 몇 점이 놓였다. 그가 마지막까지 먹고 싶어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귤 한 접시와 전 몇 조각. 지난달 26일 세상을 뜬 염아무개(71)씨의 초라한 빈소에 그를 아는 노숙인과 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찾아왔다. “형님, 좋은 데로 가세요.” 서울 종각역에서 염씨와 함께 종이상자를 깔고 누웠던 노숙인 정아무개씨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정씨는 쓸쓸한 빈소의 향이 꺼질세라 밤새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영정 곁을 지켰다.
홀로 살던 노숙인 염씨의 빈소는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무연고자 장례 지원 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염씨도 다른 무연고자 대부분이 그렇듯 술 한잔 받지 못한 채 서둘러 화장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흘장은 언감생심이다. 염씨는 빈소가 차려진 이튿날 발인을 마치고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한 줌 재로 변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었다는 염씨는 젊은 시절 건설 붐이 일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용 트럭을 몰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귀국해서 집도 마련하고 큰 트럭도 샀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에 휘청이기 시작한 삶은 2005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억원에 달하는 차량 할부금을 내지 못했고, 급기야 2007년부터는 종각역에 자리를 폈다. 염씨는 노숙인 지원 단체인 ‘홈리스행동’의 도움을 받아 6년 전부터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세간살이라고 해봐야 1인용 침대와 텔레비전이 전부였던 월세 23만원짜리 좁은 방에서 살던 그는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숨을 거뒀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폐질환으로 세상을 뜬 그가 남긴 재산은 고시원 총무에게 맡겨둔 20만원과 가방 속의 천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항상 지녔던 가방에서 작은 증명사진이 나와 그나마 영정을 만들 수 있었다.
왕래가 끊겼던 가족들은 주검 인수를 포기했다. 동료 노숙인들과 무연고자·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돌봐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이 상주를 대신했다.
무연고 주검은 ‘마지막 술 한 잔’ 못받고 곧바로 화장
작년 숨진 922명 무연고 처리 시민단체 지원 받으면 그나마 이틀장이라도 치뤄
홈리스행동의 활동가 박사라(30)씨는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박씨의 말처럼 염씨의 사례는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염씨처럼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된 이는 922명에 이른다. 장례를 치를 피붙이가 아무도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장례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주검 인수를 거부당한 이들이다. 지난해 285명이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된 서울시에서는 해마다 입찰로 무연고 주검 장례업체를 선정한다. 염씨도 주변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장례 절차 없이 업체를 통해 곧바로 화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무연고 주검 장례를 맡아 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가족들 형편이 어려워 주검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무연고 주검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1인 노인가구가 2015년에는 137만9000가구(전체 1인가구의 27.3%), 2025년에는 224만8000가구(34.3%), 2035년에는 343만가구(45%)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평균 10만가구씩 증가하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고독사 등 홀로 사는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지금의 고된 몸도 힘들지만,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할 현실을 생각하면 ‘죽음 이후’는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죽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거짓말이다. ‘평등’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몸은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결연 장례’ 신청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지역 임대주택에 사는 한 할머니는 최근 사회복지사를 통해 자신이 숨지면 장례를 대신 치러달라고 ‘나눔과나눔’ 쪽에 요청했다.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그는 “내가 죽으면 누가 장례를 치러줄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78살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중증지체장애인 딸(50)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너무 걱정스럽다”며 어머니 장례를 대신 치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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