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코노믹 리뷰] 죽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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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3861 |
등록일 | 2013/09/22 00:00 | ||
[한가위 기획]죽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웰다잉(well-dying). 글자 그대로 ‘잘 죽는 것’이다.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면 살아있는 시간이 훨씬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오늘이 죽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관에도 들어가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삶과 한 끗 차이인 죽음, 친해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나을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먹거리나 의복 등 사회 전반에 ‘웰빙’열풍이 불었다면 최근에는 ‘삶의 질’뿐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한 웰다잉(Wel-dying)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는 것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걸” 하얀 수의를 입고 좁은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데 번뜩 아침에 엄마와 통화한 생각이 났다. 바쁘니까 할 말 없으면 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막상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할 말이 무궁무진하게 나오는 것이다. 옆 관에는 조지 버나드쇼가 누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하고 비웃는 것도 같았다. 지난 21일 효원 상조가 후원하는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 체험을 한 기자의 소감이다. 힐링과 죽음의 다잉이 합쳐진 효원힐링센터의 ‘힐-다잉 체험’은 가상의 죽음 체험을 통해 미래의 남은 삶을 새롭게 설계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총 3시간 30분 정도, 무료로 이뤄지는 임종 체험은 영정사진을 찍고 죽기 전에 꼭 남기고 싶은 말들을 유언장으로 작성해보며 입관을 통해 지나온 삶을 회고해보는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효원힐링센터의 강진영 원장은 “죽음을 체험해본다는 것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 설정을 해준다고 볼 수 있다”며 “그래서 내가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삶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지만, 그 두려움을 미리 겪어보면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처럼 죽음을 부정적인 인식으로 무조건 외면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죽음을 직시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장례의향서를 미리 써두어 자신의 장례방법까지 꼼꼼히 챙기는 노인들부터, 임종 체험을 통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젊은이들까지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와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는 ‘웰다잉’이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효원힐링센터에서도 한 달에 800~1000명 정도가 체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서대문구는 ‘웰다잉 프로그램 통해 무연고 사회에 대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서울시설공단(서울시립승화원)과 MOU를 체결했다. 서대문구는 주민들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고 죽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인 ‘아름다운 여행’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서대문구 외에도 서울 지역엔 임종 체험 교육 등 웰다잉 관련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웰다잉 연극단’을 운영, 죽음 준비교육을 폭넓게 펼치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는 최근 인생건강 중간점검 프로젝트인 웰다잉 프로그램, ‘원데이 미라클’ 캠프를 론칭했다. 이 캠프 프로그램 가운데 ‘체인지 라이프’에서는 나에게 맞는 데일리 운동과 영양식단, 웰다잉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인생을 주제로 프로그램이 진행한다. 이는 웰다잉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6월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팀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4명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의 첫째 조건으로 꼽았다. 환자나 가족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치료보다는 ‘모두의 행복’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웰다잉에 필요한 방안으로 88.3%가 ‘자원봉사 간병 품앗이 활성화’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을지대 장례지도학과나 장례지도사 자격증과 같은 장례관련 교육도 개설되고 있으며, 각종 장례용품을 인터넷으로도 구매할 수 있게 되는 등 시대의 흐름과 발 맞춰 장례 분야 역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죽음도 미리 준비해야 병원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죽음을 미리 준비하겠다는 ‘웰다잉(Well-dying)’ 준비도 있다. 버킷리스트, 유서쓰기 교실 등이 보통이던 웰다잉 열풍이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정하는 것으로 확대된 것이다. ‘사전장례의향서’도 그중 하나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장래 죽음에 임박한 내가 스스로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의료진이 치료 방침 결정 시 참고하도록 미리 작성하는 서류다.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생전 유서(Living Will)’와 비슷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 김 할머니의 첫 존엄사 허용 판결 이후 도입됐으며 매년 작성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아직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지난 1월 서울대학교병원 김범석·윤영호·허대석 교수팀이 전국 17개 병원 암환자들과 가족, 전문의, 일반인 38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암환자 93%, 가족의 92.9%, 암전문의의 96.7%, 일반인 94.9%가 사전의료의향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장례서비스 전문기업 해피엔딩(대표 박덕만)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라는 제목의 메모리얼노트를 출간했다. 이 메모리얼노트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과의 이별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구성돼 남기고 싶은 여러 가지 사항을 노트 형식으로 기록하였다가 임종 전에 가족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책이다. 한편, 죽음과 관련해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은 “죽음 교육은 특히 어린아이에게 필요하다”며 “예를 들면, 아이의 엄마가 아이가 앞에 있는데 남편한테 ‘옆집 아저씨가 발을 헛디뎌서 죽었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그 말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이어 “일찍이 서양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해 인지하도록 교육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공동묘지’로도 자주 간다”며 “선생님은 아이들을 묘지에 풀어놓고 1930~40년대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오라는 등 과제를 내주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국 사회는 ‘죽음’에 대해 너무 금기시하고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원장은 “초등학교 때 즈음부터 ‘죽음’을 인지하게 되고, 관심이 높아지는데 이런 인지 발달 과정에 있을 때 교육을 해야 한다”며 “잘못된 교육, 앞서 말한 부모의 툭 뱉는 말투와 ‘죽음’은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고,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아란 alive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