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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죽기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802
등록일 2014/10/02 00:00

천애의 무덤 같은, 세상의 끝처럼 아무런 꾸밈없고 가차 없고 무정한 거기, 파타고니아 푸에르토나탈레스

 

“님, 여행 좀 다니셨나 보죠? 계속 어디를 갔더니 뭐가 좋았다고 염장 지르는 이야기만 하시넹. 도대체 몇 나라나 가보셨어요?”
“뭐, 제가 어디어디 좀 다녔다고 자랑하자는 건 아니고, 그렇게 많이 간 것도 아니고요. 한 스무 나라쯤 가봤나 모르겠네요. 어떤 나라는 대여섯 번도 갔으니까 그걸 한 나라라고 치면 서른 개는 넘겠네요.”
“팔자 좋으시넹. 작가가 맨날 외국이나 댕기고 그래도 돼요? 모국어 덕에 밥벌이를 하면서 말이지.”
“뭐, 내가 가고 싶어서 내 돈 내고 간 건 몇 번밖에 안 돼요. 뭔가 일이 있어서 간 거고,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간 적도 있고. 아무 일 없이 먹고놀자고 간 건 아닌데요.”
“그래도 그렇지, 불황에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알바 구하기도 힘들고,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에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실컷 부려먹은 사람을 정규직으로 채용 안 하려고 잘라 버리지를 않나, 정규직도 구조조정이네 명퇴네 해서 날벼락을 맞는데 말이지.”
“저, 제가 해야 할 일 안 하고 소설도 안 쓰고 엉뚱한 데 딴짓하면서 돌아다녀서, 나비효과 같은 걸로 다른 사람들이 억울하게 날벼락 맞는 건 아니죠? 작가는 어차피 평생이 비정규직이죠. 명퇴고 정년이고 없어요. 청탁이 끊기면 그냥 끝이에요. 나이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단어도 까먹고 쓸 건 자꾸 줄어들고 오타까지 많이 나는데 원고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요. 원고료 더럽게 안 올라요. 책값도.”
“됐어요. 그런 하소연 들어주고 책까지 사줄 의무가 나한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사세요, 쭉.”
“그쪽에서 먼저 물어보셨잖아요. 몇 나라나 갔느냐고.”
“말난 김에 그럼, 이때까지 가본 데 중에 딱 한 군데를 죽기 전에 꼭 한 번 더 가고 싶다, 그런데 있으면 한번 얘기해 보세요.”
“공짜로요?”
“아니, 내가 내 시간 내서 님 얘기 들어주는데 그게 왜 공짜예요? 내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아, 예… 감사합니다. 제가 아까 점심을 메밀국수를 먹었거든요. 저는 메밀국수를 먹으면 아예 아무것도 안 먹는 때보다 더 빨리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아요. 그럼 먹을수록 손해일까요? 메밀로 된 음식을 제가 워낙 좋아하니까, 뭐 할 수 없죠.”
“메밀국수 파는 식당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으세요?”
토레스델파이네의 계곡 아래
핑크와 옥색 빙산이 떠 있는
호수가 있어요
살을 에는 듯한 거센 바람이 불어요
풍력발전 하면 끝내주겠다 하니까
전기 만들어봐야 쓸 사람이 없대요
“죽기 전에 꼭 한 군데 다시 가볼 수 있다고 한다면, 파타고니아예요. 칠레 파타고니아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요. 처음에는 방송사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갔는데요. 서울에서 칠레 수도 산티아고까지 가는 데만 마흔 시간쯤 걸리거든요. 거기서 비행기 타고 삼천 킬로미터쯤 남쪽으로 가면 푼타아레나스가 있는데 거기에서 버스로 네댓 시간 도로 북쪽으로 올라가면 푸에르토나탈레스예요. 푸에르토나탈레스가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출발점이죠. 우리나라하고 대척점에 있는 아르헨티나를 통해서 들어가거나 빙산 둥둥 떠다니는 바다로 크루즈 배를 타고 가는 길도 있다네요. 하여튼 서울서 거기까지 가는 데 빨라도 사흘은 잡아야 할 거예요. 항공권 값만 해도 오륙백? 2007년에 그랬으니까.”
“좋겠수다. 그렇게 돈 많이 드는 데를 공짜로 가봐서.”
“아니, 안 좋아요. 또 가보고 싶은데 너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쉽게 갈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안 가봤으면 가보고 싶지 않았겠죠. 막상 다시 가본다면 실망할지도 몰라요. 여행이라는 게 몇 살 때, 어떤 계절에, 누구와, 왜 가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지는 거니까요.”
“암튼요, 왜 거길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건데요?”
“거긴 사실 사람이 살기에는 그렇게 좋은 데 아니에요. 빙산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일년 내내 춥거나 서늘하고 강수량이 적어서 건조해요. 그나마 잘 자라는 게 풀이나 키가 종아리 정도까지 안 오는 가시투성이 관목 정도예요. 양을 엄청나게 많이 키워요. 털도 얻고 양고기는 영국으로 수출한다더군요. 목양업자가 자기 가족들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따로 만들어놨는데 소방서에 우체국에 학교에 없는 게 없어요. 목양 왕조로 대를 물려 통치하는 느낌이더라고요. 거길 지나가다 보니까 하늘에는 콘도르가 솔개처럼 빙빙 돌고 있는데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저택이 있는 거예요. 남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거기를 다녀갔다는 거예요. 그 양반, 푼타아레나스에서 여학교 교장 선생님을 지냈는데 목양업자가 방학 때면 그 집으로 초청을 해서, 잘 대접받고 잘 있다 가고 했대요. 그런 집에 있으면 작품이 저절로 쏟아지겠더라고요. 나라도.”
“그런 집에서 시중을 받으면서 시를 쓰고 노벨상 받고 한 게 부러워서 다시 가보고 싶다? 그런 집에 초청을 해줄 부자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아니, 난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원하지 않아요. 동행도 없이 혼자 가보고 싶어요. 내가 거기를 간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해요. 거기에 언젠가 헝가리인가 체코인가에서 배낭여행자가 혼자 왔더래요. 그 사람이 혼자 와서 텐트 치고 뭘 해먹었나 본데, 그때 몇 년 동안 가뭄이 든 풀밭으로 텐트에서 불이 옮겨붙어서 삽시간에 번졌는데 진화할 새도 없이 그 지역이 거의 홀랑 타버렸다고 해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이나 푸에르토나탈레스는 관광으로 벌어먹고 사는 덴데 관광지 자체에 불이 났으니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죠. 그런데 칠레에는 외국인 여행자가 과실로 불을 내거나 했을 때 배상을 하게 할 법규정이 없었다더라고요. 그 사람은 굉장히 미안해하긴 했지만 붙잡는 사람도 없고 하니 그냥 귀국해 버렸죠. 그러고는 그 사람 나라에서 재난 구호품 지원이 좀 왔다나 그랬대요. 그 사람도 자기 전 재산이라면서 천만원인가 하는 돈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는 님이 혼자 가서 거기다 불을 한 번 더 내고 싶은 거예요?”
“에이, 그새 법이 바뀌었겠죠. 내가 다시 가보고 싶은 건 거기가 내가 가본 곳 가운데서 가장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을 보여줘서예요. 나는 지옥이나 천국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그게 인간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건 알아요. 토레스델파이네의 계곡 아래에 핑크와 옥색의 빙산이 떠 있는 호수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로 불교에서 말하는 풍도지옥처럼 살을 에는 듯한 거센 바람이 불어와요.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내가 이 바람 가지고 풍력발전 같은 거 하면 끝내주겠다 하니까 가이드가, 그 전기 만들어봐야 쓸 사람이 없어요, 그래요. 인구가 이만명인가밖에 안 된다고. 그 삭막함, 천애(天涯)의 무덤 같은, 세상의 끝처럼 아무런 꾸밈없고 가차 없고 무정한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세상 안에 살면서 일생의 절반은 세상 바깥을 꿈꾸는 아이러니가 삶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해주고.”
“그런 데 많이 가세요, 혼자서만. 처음 갈 때 같이 갔던 사람한테 욕 바가지로 먹지 말고.”
“축복으로 받아들일게요. 그쪽 분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가보시기를.”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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